뉴질랜드 남섬여행 - 밀포드사운드 Day2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알람이 여기저기서 울리기 시작한다. 알람은 괜히 챙겨 왔다 싶다.

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울려대니..

 

어느새 침대 주변 이웃들과도 친해졌다.

특히 뉴질랜드 원주민 출신인 키리는 어젯밤 모두가 모인 레인저와의 미팅도 불참하고 잠만 계속 자길래 살짝 경계하고 있었는데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 드디어 몸을 일으키더니 우리와 무섭게 수다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 아무래도 이곳에는 잘못 오신 것 같다.

일상생활조차 힘들 정도의 거구여서 어제 아침 보트를 타고 들어와서 불과 5km인 이 헛까지 무려 7시간이 걸리셨다고 한다.

또한 제대로 된 끼니도 거르고 계속 땅콩만 드시고 같이 왔다는 동생은 찬바람이 쌩쌩 분다.

 

우리가 아침을 먹고 돌아왔을 때쯤

동생은 키리에게 몇 마디 쏘아붙이고는 먼저 배낭을 메고 나가버렸다.

동생이 옆에서 도와줘도 겨우 오늘 일정을 마칠까 말까인데 그냥 쌩하고 가버리니 키리가 너무 안쓰러웠다.

 

어제 하룻밤 사이에 샌드플라이에게 물려 벌집이 된 다리를 보여주면서

동생이 인섹트 레펠런트가 있는데도 안 빌려 준다며 안면 식도 없는 우리에게 동생 험담을 한 바가지 하신다.

우리라고 마냥 키리 하소연을 듣고 있을 순 없으니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던 벌레 물릴 때 바르는 약과 인섹트 레펠런트를 빌려주고 짐을 쌌다.

 

오늘은 어제와 다름없는 무게의 가방을 메고 16.5Km를 가야 한다.

 

키리와는 다음 헛에서 꼭 다시 보자고 약속한 후 우리는 먼저 헛을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연히 나무 뒤에 앉아 울고 있는 키리의 동생을 보았다.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먼저 나를 보고는 눈물을 닦고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왠지 마음이 짠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사이가 안 좋아서 10년 넘게 연락조차 안 하고 지내다가 최근 화해하고 이번 여행을 온 건데

이렇게 사사건건 싸우게 되니 본인도 너무 속상하다며 또 눈물을 보였다.

그래도 먼저 나온 게 미안해서 언니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보고는 먼저 가라고 한다.

왠지 발길이 안떨어지지만 그래도 다음 헛에서 꼭 다시 보자고 인사하고는 헤어졌다.

 역시 오늘도 날씨가 좋지 않다. 곧 비가 올 것 같은 불안감에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중간에 점심을 먹거나 쉬어 갈 수 있게 간이 시설 등이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간단히 우리가 가지고 간 버너로 물을 데우고 즉석밥과 카레로 점심을 해결했다.

밀포드사운드에는 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듯한 깨끗함이 있다.

 

 

 

트랙 중간중간에 다른 곳으로 우회할 수 있는 길도 나오고 호수, 폭포, 동굴 등 볼거리가 심심하지 않게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이라는 명성에 맞게 걷기 정말 좋게 되어 있다.

 

 

 안개가 심해지고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할 때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레인저가 보였다.

무전을 받고 여자 하나를 데리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레인저까지 데리러 가는 거 보니 키리가 오늘 헛까지 오긴 올 건가 보다.

빠르게 걷다 보니 2시도 안 되서 헛에 도착하고 말았다.

종이에 사인을 하려고 보니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6명밖에 안된다. 게다가 모두 남자.

나도 천천히 여유롭게 걷고 싶은데 뭐든지 빠르게 하려는 이 근성은 버릴 수가 없다.

일단 헛에 도착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책이나 보고

그 이후에는 밧데리 아껴가며 핸드폰으로 영화 한 편 보는 정도가 다다.

 

 10시가 넘어 주방도 소등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쯤 

레인저와 키리의 동생이 지친 모습으로 Mintaro Hut에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키리는 결국 다른 레인저와 함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막상 진짜로 포기했다니 많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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