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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나무가 멋진 더비에서 본 씁쓸한 호주 원주민의 현재 본문

호주/호주 일주

바오밥나무가 멋진 더비에서 본 씁쓸한 호주 원주민의 현재

자판쟁이 2014. 5. 19. 08:05

 

 

 

더비로 향하는 마음이 영 무겁다.

어제 브룸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한 바로는

아직도 Windjana gorge와 Tunnel Creek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보통 4월 중순이면 우기 때 잠겼던 길이 모두 열리는데 

작년에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아직까지 길이 잠겨있는 것이다.

언제 열릴 거 같냐는 물음에 모른다고만 하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결국 두 곳은 포기하고 더비를 지나 바로 Geikie Gorge로 가는 여정으로 변경해야 했다.

두 국립공원을 가려고 일부러 여행시기도 이때로 잡았고 

차도 사륜구동으로 준비한 건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게 쨍쨍한데 아직도 도로가 물에 잠겨있다니 쉽게 상상이 안 간다.

 

 

 

 

 

브룸에서 약 230km을 달려 더비 시내에 들어왔는데 애버리지니들이 영혼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모습이 흡사 미드 워킹데드를 보는듯했다.

 

더비의 인구는 4,500명 정도고 그중에 절반은 호주 원주민인데

대낮에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사람은 모두 애버리지니이고,

가게점원이나 경찰 등 일하는 사람은 모두 백인들이었다.

 

많은 백인 호주인들은 애버리지니들이 술과 마약에 쩔어 세금만 축낸다고 비난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은 체 지난 1~2세기를 살았고

술과 마약 또한 백인이 들어온 산물이니 마냥 비난만 할 일은 아닌듯하다.

또 아직도 사회에 팽배한 호주 원주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더비 끝까지 차를 몰고 오니 부두에 닿았다.

더비는 호주에서 조수간만에 차가 가장 심한 도시로 그 차가 무려 1.8m에 달한다고 한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나무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걸 보니 내가 갔을 때는 아마도 썰물 때였던 것 같다.

 

 

근처 공원으로 가서 늦은 아침을 먹으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호주 원주민 세 명이 다가왔다.

오자마자 손가락으로 팔을 가리키며 "Drug, drug" 하길래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없다고 하니 그럼 술이라도 달라고 한다.

이미 그들 손에는 보드카 한 병이 들려 있었고 아침 10시에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술도 없다고 하니 그럼 담배, 담배도 없다니 그럼 돈이라도...

 

솔직히 어느 정도 맛이 간 사람들인지 분간할 수가 없어서 조금 무서웠는데

다 없다고 하니 쿨하게 몸조심하고 여행 잘하라며 인사까지 하고 갔다.

몸조심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더 해야 할 거 같은데...

 

<<  The Dinner Tree  >>

후다닥 아침을 먹고 근처 관광안내소에 들러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 위치를 알아냈다.

 

바오밥 나무는 사막과 같은 건조한 환경에서 자라는데

호주에서는 킴벌리 지역이나 노던 테러토리주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건기를 대비해 물을 항상 저장하고 있어서

짧고 통통한 배불뚝이 아저씨같이 모습을 하고 있는 게 꽤 귀엽다.

어린 왕자에 보면 바오밥나무는 자주 뽑아주지 않으면 한없이 뿌리를 내려 별을 꿰뚫어 버리는 나무로 등장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바오밥나무는 천 년까지도 살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

 

<<  프리즌 트리(Prison Boab Tree)  >>

 

이 바오밥나무는 더비 입구에 있는 나무로 프리즌 트리라고도 불리는데

예전에 호주 원주민 수감자를 더비로 데려올 때 쉬었다가는 장소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 잡혀 온 애버리지니 수감자들은 대부분 가축을 잡아먹었다는 죄목이나 노예로 잡혀 온 건데

킴벌리 지역에서 쇠사슬을 묶인 채로 하루에 24~48km를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가장은 노예로 잡혀가고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 하인으로 잡혀갔던 암울했던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별다른 직업 없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사는 호주 원주민들.

 

더비는 백인들이 망쳐놓은 과거로 인해 불행한 현재를 살고 있는

호주 원주민들의 과거와 현재가 한눈에 들어오는 여행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