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Never Say Never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포카라(Pokhara) - 간드룩(Ghandruk) 본문

아시아/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포카라(Pokhara) - 간드룩(Ghandruk)

자판쟁이 2013. 2. 5. 19:42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 포터와의 만남

 

 

포카라에 와서 단 하루도 정전이 안 된 날이 없다.

어제도 한참 짐을 챙기고 있는데 때마침 전기가 나갔다.

어렸을 때는 전기가 나가면 촛불 아래서 노는 것도 낭만이라고 여겼는데

성인이 되니 불편한 건 그냥 불만스러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어제는 그냥 자고

새벽 5시쯤 일어나 어제 못 싼 짐을 마저 주섬주섬 챙겼다.

혹시 너무 무거우면 포터에게 못할 짓이니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들어보니 10kg은 조금 넘을듯하다.

 

포터 아저씨와는 어제 살짝 만남을 가졌다.

왜소한 체격에 나이도 꽤 들어보이셔서 살짝 걱정이 됐지만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괜찮다며 소개해주신 분이라 믿고 가기로 했다.

하루 10불씩 총 7일간 70불을 주기로 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만원이 조금 넘는 돈에 두 사람 몫의 짐을 지고 그 산길을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돈이란 가진 자에게는 편리하지만 없는 자에게는 참 잔인한 도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6시에 오기로 한 포터 아저씨와 택시까지 벌써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보통 출발 전에 포터비를 반정도 미리 준다기에 우리도 차에 오르기 전에 포터 아저씨께 미화 30불을 건넸다.

그런데 포터 아저씨가 갑자기 달러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자기가 손해이니 네팔 루피로 달라고 하신다.

 

어제 분명 하루 10불이라고 이야기를 마쳤는데 출발 당일에 와서 말을 바꾸니 살짝 짜증이 났다.

단순히 환전소에 가서 30불을 바꿔서 그 돈을 그대로 포터에게 주는 거면 상관이 없지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환전 수수료도 물어야하고 어제 갑자기 떨어진 환차손도 생기는 거니

한마디로 돈을 더 달라는 말이 되는 거다.

물론 다 해봤자 7일 치 해도 최대 만원도 안되는 돈일 테지만

어제 말해도 됐을 텐데 빼도 박도 못할 출발 직전에 이러는 것이 왠지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미화를 받던가

아니면 나는 내일 새로운 포터를 구해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괜히 잘다녀오라며 마중 나오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만 중간에서 난처해하시고..

 

결국 포터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그냥 가자고 한다.

나도 차에 오르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시작부터 마음이 가볍지 않다.

 

하지만 나를 위한 여행인데 다른 사람 기분 맞춰주기 위해서 내 돈을 낭비하는 것도 올바른 소비가 아닌 것 같다.

좋은게 좋은 거라고 그냥 돈을 내주다 보면 나를 위해 온 여행인데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어이없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우리는 1시간을 넘게 택시를 타고 나야풀로 갔다.

 

 

 

손가락 버튼을 눌러 주시면 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야풀(Nayapul)에 도착해서 장비를 점검하는 사이에 포터 아저씨 어디서 만두를 몇 개 들고 오셨다.

덥석 받아 먹고 나니 왠지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역시 사람이 친해지는 데는 먹는 거 주고받는 거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우리도 가지고 있던 초코파이 하나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신다.

 네팔에서는 돌을 저렇게 망치로 깨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봤는데 저렇게 온종일 돌을 깨서 팔아 버는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 60원 정도라고 한다.

보통 극 빈곤층이나 네팔 최하층이 주로 종사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저런 삶은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없기에 더 괴로울 것 같다.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

오늘은 사울바자르(Syauli Bazar), 김체(Kimche)를 거쳐 간드룩(Ghandruk)까지 갈 예정이다.

빨간 통 하나에 20kg 가까이 한다는데 그걸 두 개나 메고 조랑말들은 어디까지 올라갈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면 허가(Permit)을 미리 받아야 하고 이곳에서 도장도 받아야 한다.

근데 난데 없는 양 떼들 때문에 입구가 완전히 봉쇄되었다.

옆에 있던 서양 애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그냥 양 떼가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 포터 아저씨는 이리저리 휘젓고 들어가서 금세 받아서 나오셨다.

등에 맨 것만 우리거고 앞에 배낭은 포터 아저씨 거다. 

보통 15kg까지 메고 간다던데 우리 가방은 그 정도로 무겁지 않았는데도 많이 힘들어하신다.

허리에 두르는 끈을 매면 조금 더 편하다고 해도 답답해서 싫다며 그냥 가신단다.

이곳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고지고 날라야 하는 것이 운명인가보다.

한 시간 반 정도 평지를 걷다 보니 사울 바자르(Syauli Bazar)에 도착을 했다.

포터 아저씨가 더 올라갈수록 더 비싸지니 여기서 점심을 먹으라 하신다.

올라가면 더 비싸다고 하는데도 이미 이 가격이면 포카라 시내보다 두 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밥을 먹고 나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끝도 없는 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높이가 있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지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보다 포터 아저씨가 먼저 지치셨다.

보통은 여행객이 먼저 쉬자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포터 아저씨가 먼저 가방을 내려놓더니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하신다.

그러곤 신발을 벗고 개울가로 올라가 한참을 숨을 고르셨다.

보통 포터들이 20대 전후반인데 반해 우리 포터 아저씨는 연세가 조금 많으신 듯하다.

너무 힘들어하시니 어쩔 수 없이 가방에 있던 짐을 조금씩 빼서 우리 가방에 넣었다.

힘들어하시는 포터 아저씨를 격려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을 올라가다 보면 네팔사람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네팔 사람치고 가만히 앉아서 노는 사람은 보기가 힘들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무언가 일을 하느라 바쁘다.

저 멀리서부터 벨 소리가 소리가 들리고 동키들이 줄지어 내려온다.

아까 봤던 말이 옮기든 것과 같은 통을 옮기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삶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녹록하지 않은듯하다.

네팔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열한 내전에 치렀던 나라였다.

2006년에 마침내 내전은 끝이 났지만 12년간 14,000명의 사상자를 냈을 정도로 나라는 혼란스러웠었다.

저 말처럼 네팔에 언제나 평화와 사랑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외국에 나가서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우리나라 국기.

이제 더는 한 발짝도 못 가겠다 싶은 심정이 들 때쯤 간드룩에 도착했다.

저런 계단을 오늘 한 5시간쯤은 오른 것 같다.

길거리에 앉아 한 10분쯤 기다리니 포터 아저씨가 올라오시는 게 보였다.

정말 저분을 믿고 계속 가도 되는 건지 왠지 불안하다.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게스트하우스 체크인도 도와주시고 방까지 안내도 해주신다.

가방을 놓고 나가시면서 내일은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물으시길래

오늘과 같은 여섯 시가 좋을 것 같아서

 "Six Oclock" 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며 손가락까지 들어 보여줬는데도

못 들은 척 Seven? 이라고 되물으신다 ㅎㅎ

 

일곱 시가 좋으면 그냥 일곱 시에 보자고 하자

오늘 처음으로 내게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방을 나가셨다.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에 게스트하우스 주인집 아드님을 만났다.

카리스마 있는 얼굴에 네팔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화에 셔츠까지 받쳐입은 히말라야 패셔니스타였다.

아직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도 어찌나 다부지게 일을 하는지..

나의 철부지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어른스러운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