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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호주 일주

호주 여행 - 살아있는 게를 처음 요리해 본 여행자

자판쟁이 2013. 11. 4. 12:30

 

살아있는 게를 처음 요리해 본 여행자

  호주 여행

 

 

 

2시간 동안의 게잡이는 우리에게 여섯 마리의 게를 선사해 주었다.

아마 여섯 마리 모두 그날 억수로 재수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 같은 생초짜에게 잡힌 걸 보면 말이다.

 

 

어차피 냉장고도 없는 떠돌이 인생이기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네 마리만 남기고 두 마리는 다시 바다로 놓아 주었고 미끼로 샀던 물고기들도 갈매기에게 주었다.

 

 

 

 

 

 

 

 

만선의 기쁨이란 게 이럴까?

내 손에 든 양동이에는 단 네마리의 게만이 뻐끔거리고 있는데도

왠지 두 어깨 무겁게 고기를 지고 가는 어부의 마음 같다.

 

 

그사이에 물은 더 빠져서 이제 바다가 아니라 끝도 보이지 않는 갯벌이 되어 있었다.

 

 

그 바닷길을 말을 타고 나온 가족이 개와 함께 유유히 산책을 하고 있다.

 

 

매일 말을 타고 바닷가를 달리는 저 아이의 감수성은

매일 밤 눈 씨 벌겋게 책만 파야 하는 한국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위장에서는 천둥이 쳤다.

차에서 버너와 냄비를 꺼내와 찬물을 붓고 게를 넣으려 하니

이것들도 이제서야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격렬히 반항하기 시작했다.

 

이런대서 초보 낚시꾼의 티가 나나 보다.

물에서 튀어나온 게들을 다시 냄비에 집어넣느라 난리 법석을 피웠다.

그들의 집게질은 목숨을 걸고 쏘는 꿀벌의 침처럼 진짜 손가락 뼈라도 부술 기세였다.

어찌 수습해서 다시 게들을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았는데 어찌나 냄비 뚜껑을 간절히 두드리던지..

갑자기 안도현님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시를 우연히 읽고는 간담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있다.

어쩜 시인은 게들의 마음도 읽어낸단 말인가.

간장게장을 먹는 내가 이처럼 잔인하게 느껴지도록..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렇게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약 70km를 더 달려 포트 어거스타(Port Augusta)로 왔다.

포트 어거스타는 남호주에서 7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는데 와보고 나니 굉장히 조용한 곳이었다.

 

 

 

 

 

간단히 항구 주변을 산책하고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달렸다.

 

 

남호주로 오니 시드니와는 다른 풍경에 반해서

운전하는 것이 즐겁고 질주 본능이 소록소록 솟아나고 있었다.

 

이동 경로 : Port Pirie - Port Germein - Port Augusta - Streaky Bay

이동 거리 : 680km